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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50년대회고-이호철

◎ 이름: shin7148 (shin7148@weppy.com)

50년대회고-이호철  
50년대 소설 회고
                           이 호 철    

  50년대 문학이라고 흔히 일컬을 경우, 구체적으로는 55년 전후에 문단에 등단한 사람으로 65년 전
후까지 약 10년 동안의 활동내용을 총괄한 것으로 친다면, 지금 와서 돌아볼 때, 그다지 풍성한 것이
못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 그 세대에 속해 있는 필자의 솔직한 생각이다.
  이 무렵의 신진 기수로 불리웠던 손창섭, 장용학, 김성한, 오상원, 선우휘, 곽학송 등을 묶어놓고
볼 때도 지금 와서는 다분히 떠들썩하기만 했다는 인상이 짙고, 시에서 김수영, 신동엽 등이 지금에
와서 뒤늦게 각광을 받고 있으나 정작 50년대 신인군이 한창 활동하던 그 무렵에는 주류에서 약간 비
껴서 있지 않았는가 한다.
  앞에 든 작가들보다 조금 뒤에 출발한 박경리, 이범선, 서기원, 하근찬, 최인훈, 남정현과 필자 등
의 활동을 감안하더라도, 50년대 작가 시인이라고 불리는 당시 신인군들의 활동이 미미한데 그쳤다
는 필자의 생각은 역시 변함이 없다.
  이 시기의 이들 활동을 손쉽게 들여다보자면, 몇몇 잡지를 훑어보면 된다.
  53년 환도와 55년 1월의 <현대문학> 창간, 55년 6월의 <문학예술> 본격 복간, 그리고 <사상계>지
의 한청(韓靑)빌딩 시절이 이에 대응되고, 그보다 2,3년 늦어 <자유문학>이 창간된다. 50년대 문학
이 활동한 무대는 바로 이상의 4개 잡지로 대체로 요약될 수 있다.
  필자 자신으로 볼 때도 55년 7월에 <문학예술>을 통해 등단, 65년에 장편 「소시민」을 완료하기
까지의 10년 간과 정확하게 맞먹는다. 그리고 66년에는 「서울은 만원이다」라는 신문연재소설을 쓰
고 있다.
  그렇다면 50년대 문학이 활동한 그 4개 잡지의 특색과 주도인물을 대충 살펴보면, 50년대 문학이라
는 개념이 어느 정도 명확하게 부각될 수 있을 것이다.
  50년대 초기를 편의상 '동리·미당시대'로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곧 <문예>지에서 <현대문
학>지 초기까지로서, 동리, 순원, 미당, 유치환, 조연현, 청록파 세 시인 등이 문단을 주름잡던 시기이
다.
  다 아시다시피 <현대문학>지는 동리, 미당, 조연현 등이 주도한 <문예>지 후신으로서, <문예>지
야말로 바로 좌우투쟁 이후 분단시대라는 테이프를 끊은 명실상부한 대표적인 문학지였다. 발행은 모
윤숙이었으나 이산, 이현구 등과 함께 정가, 외교가 등에 투신해 있었으므로 청년문협 멤버인 동리,
조연현 등이 실제 일을 맡아 했다. 다시 말하면, 대한민국이 수립되는 데 있어, 그 문화면의 터전을 떠
맡은, 남북 분단의 이편 쪽 문화분야 주역들이 펴낸 잡지였다. 지금도 나는 52년, 항도 부산에서 당시
문인들이 자주 드나들던 '금강'다방에 두어 번 들렀던 일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가 있다.
  그때의 내 인상을 한마디로 한다면 이렇다. 치열한 좌우 이념싸움 끝의 흐리터분한 고요와 허탈이
라고나 할까. 일선에서는 한치 땅을 두고 밀고 당기는 포연(砲煙) 자욱한 싸움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항도 부산까지 밀려 내려온 문단은 이미 마땅하게 싸울 적(敵)이 없어, 미지근한 고요와 허탈이 감도
는, 그런대로 오붓하게 모여앉은 후끈찝찔한 집단이었다. 다방 속으로 들이비치던 오후의 양광(陽光)
이 지금도 눈앞에 어른거린다.
  <현대문학>지 초기의 사조면(思潮面)의 특색을 굳이 찾자면, 범휴머니즘이 되겠으나 주로 원색성·
반공·토속성·소박한 순수지향 등으로 요약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념싸움에 지친 끝의 어느 끝자
리, 원색적 무풍지대의 안개 속에 잠겨 있던 사각지대로서 동리, 미당은 작품 질에 있어서나 신인 발
굴에 있어서나 당시 문단에서 압도적인 영향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 <현대문학>지 시절의 초기 신인
으로서는 소설에 장용학, 손창섭, 곽학송, 박경리, 서기원, 한말숙, 시에 김관식, 구자운, 박재삼, 고
은 등이 있다. 명동의 문예싸롱·대성·갈채다방 등이 그 본거지 노릇을 했고, 술집 명천옥 시절이기도
하다. 가부장적 분위기가 농후한 것이 특징이었다.
  한편, <문학예술>지는 오영진, 황순원, 김이석, 박남수, 원응서 등이 주도했던 잡지로서 1·4 후퇴
로 북한에서 갓 남하한 박·원 등이 피난지 부산에서 주간 타블로이드판으로 시작, 환도 전후해서 월간
으로 바뀌었다. 황순원만 2,3년 앞섰을 뿐, 김이석·박남수·원응서 등 갓 남하해온 그들은 이미 터가 잡
혀 있던 문단에 조심스럽게 적응, 당시의 동리·미당 일색인 <문예> 또는 <현대문학>지보다는 서구
쪽의 새 동향에 약간 더 민감했었다는 정도가 특색이라면 특색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소박한 리얼리즘, 리리시즘 등의 분위기가 이 잡지를 감도는 대체의 분위기였으나, 화가 이중섭·장
욱진 등과의 친분관계로 모더니즘 취향도 약간 가미되어 있었다. 초기 신인으로 소설에 필자·최상규,
시에 박희진·신경림·성찬경·박성룡 등이 있으며, 평론에 류종호·최승묵 등이 있으나, 57년에 소설에 선
우휘·송병수, 평론에 이어령 등이 이 잡지를 통해 나오면서 조금 뒤에는 50년대 작가 시인군의 주무대
였던 '사상계시대'로 확산을 하게 된다.
  <자유문학>지는 이산(怡山)·안수길·이헌구·모윤숙 등 주로 30년대의 해외문학파 멤버들이 주도했
던 잡지로서, 이산적 인품이 짙게 반영되었다. 이산은 다 아시다시피 일제말 옥중생활을 치렀고, 대한
민국 초창기에는 이헌구와 더불어 잠시 관직에도 있었으며, 시는 비교적 모던 취향이 가미된 순수지
향이었다. <자유문학>지는 재정난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이산의 옥중경험 등이 밑받침된
투철한 민족의식으로 문학의 사회성·시대성이라는 명제를 그 첫 싹의 형태로나마 터를 잡아갔다는 점
이 특색으로 보인다. 신인으로는 소설에 남정현·최인훈, 시에 김종삼·황명걸 등이 떠오르며, 명동의
동방싸롱, 광화문의 노벨다방 근처가 본거지 노릇을 했다.
  3개 문학지의 주도인물과 출신 신인들을 보면, 당시의 3개 잡지의 특색이 지금 와서는 그 나름으로
대강 드러나보인다.
  이상 든 각 문예지 출신의 신인군들과 시에 김수영, 소설에 박연희, 유주현 그리고 그 무렵 몇몇 일
간지 신춘문예를 통해 나온 김성한·전광용·정한숙·오상원 조금 뒤에는 하근찬·최현식·정연희·신동엽·
박봉우 등등이 50년대 말에서 60년대에 걸쳐 한청빌딩 시절의 <사상계>지를 중심으로 모이는 분위
기, 그것이 바로 50년대의 주조를 이룬다.    
50년대말 자유당 말기에서 60년대 초로 넘어오는 시기를 필자는 편의상 '사상계시대'라고 부르고 싶
다. 대충 잡아서 58년에서 65년까지가 이 시기에 해당된다.
  그리고 이 '사상계시대'도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볼 수가 있는데, 전기에 해당하는 것은 61-62년까
지이고, 그뒤 폐간되기까지를 후기로 보아야 한다.
  다 아시다시피 55년 전후의 <사상계>지는 문단에서 김팔봉·백철, 학계·언론계 등에서 김준엽·안병
욱·신상초·한태연, 그밖에 대학 불문과와 영문과가 중심이 된 손우성·여석기에 신진작가로 김성한·장
용학·손창섭·오상원·선우휘, 평론에 이어령 등이 주로 활동하던 시기로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동지(同
誌) 특징을 요약한다면, 자유민주주의·지성주의·근대주의·구미지향 등의 경사(傾斜)이다. 문예면에서
는 <현대문학>지 초기의 '동리·미당시대'가 일거에 확산된, 가부장적 문단질서에 대한 나름대로의 반
항이 보이는데, 그 챔피언으로 나섰던 것이 초기 이어령이었다.
  한편 카뮈, 사르트르 등의 프랑스 실존주의, 앙드레 말로의 행동주의, 포크너, 헤밍웨이, 조금 뒤에
는 앙티 로망 등등 소위 구미의 새로운 문학사조 소개와 그 이론이 휩쓸었고, 소설에서는 김성한·장용
학·오상원·선우휘 등이 크게 각광을 받았다. 동인문학상이 제정되어 1회에서 3회에 걸쳐 이들이 수상
하였다. 그러나 지성주의·근대주의는 객기와 겉치레에 치우쳐 있었고, 목청이 높은 데 비해서는 실속
이 영글지는 못하여, 천박성을 면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자유당 말기, 반독재투쟁의 열도가 드높아지는 58년 전후에 <문학예술
>지가 폐간되고 그 편집진이 <사상계>지로 합류하면서 일약 동지(同誌)는 앞에 든 3개 문학지의 신
인군들을 폭넓게 안아들이게 된다. 동인상 4회에 손창섭이 수상자로 선정된 것도 이와 대응된다. 이
무렵부터 <사상계>는 대학 외국문과적 특색을 대거 탈피, 명실상부하게 민족지와 범문단적인 문예지
를 겸하게 된다.
  이미 이 무렵의 <사상계>는 앞의 3개 문예지 및 각 일간지 출신 신인군만 안아들인 것이 아니라 김
동리·황순원·안수길에 서정주·유치환·청록파·김현승 등 당시의 대표적인 작가 시인군을 송두리째 안아
들이고 있다.
  좌우싸움-분단-6·25전쟁 이후 잔뜩 경색되었던 문단과 인접과학과의 통로도 비로소 조심스럽게 다
시 열리기 시작한다.
  1962년 동지(同誌) 100호 기념 특별문예 증간호에 동원된 80여 명의 면면을 지금 훑어보면, 명실상
부하게 당시 문단의 전모(全貌)를 보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때의 권두언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사상계지가 그 100호를 맞이함에 자축의 뜻도 없지 아니하여 이제 증간(增刊)을 내고 그 전부를 문
학에 바친다.(중략) 이번 문학 증간은 이러한 우리의 노력이 또 하나의 보람을 찾고자 시도한 것이며
여기 등장하는 80명의 인사는 문단중진에서 신진에 이르는 다수를 망라한 것이며, 1961년 한국문단
의 한 개 조감도를 이룰 것임을 은근히 기약하는 바이다."
  그러나 지금 와서 냉정하게 돌아볼 때 '사상계 시대' 전기로 일컬어지는 문예사조는 단적으로 말해
서 실존주의 등 구미 현대문예사조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었다는 느낌이 역시 든다. 이 점은 그당시 몇
몇 신문과 더불어 반독재투쟁의 선봉에 서서 일약 민족지로 부상했던 동지(同誌)로서 지금 돌아볼 때
는 일말의 얼룩으로 보인다.
  필자만 하더라도 61년 단편 「닳아지는 살들」을 동지(同誌)에 발표할 때는 실존주의, 앙티 로망
등등에 필자 나름대로 귀가 솔깃하여 써본 것이었음을 밝혀둔다. 이 작품의 됨됨이는 여하간에, 이 점
은 '사상계시대'로 불리는 시절의 문예사조가 대강 어떠한 것이었는가 하는 것의 단적인 표현이다.
  4·19 전후 몇 개월은 그야말로 '사상계시대'의 절정기였다. 4·19 직후 당시의 독서인구 추세에서 동
지(同誌)의 발행부수가 10만을 육박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그러나 64∼65년 무렵까지만 해도 '사상계시대 후기'라고 이름 붙일 만한 특색은 근근이 이어져왔
다. 지금 손쉬운 기억으로도 하근찬의 단편 「삼각의 집」, 남정현의 단편 「부주(父主)전상서」에
필자의 「부시장 임지로 안가다」나 「등기수속」이 이 시기와 맞먹는다.
  같은 무렵 <새벽>지나 복간 <신동아>, <세대>지 창간도 주목해야 하고, 필자의 「소시민」이 <세
대>에 연재되고 최인훈의 「광장」이 <새벽>지에 전재(全載)되고 있다.
  당시에는 그다지도 떠들썩하였으나, 50년대 작가 시인군의 족적(足跡)은 이만큼 시일이 지나고 보
니까 꽤나 초라해보인다. 역사의 담벼락에 콱 찍힐 수 있는 작품이 과연 몇 편이나 될까. 시 몇 편과
단편소설 몇 정도나 남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필자의 솔직한 생각이기도 하다.
  '사상계시대' 이후의 우리 문학을 편의상 나는 '분극화시대' 혹은 '계간지시대'라고 부르고 싶다.
  이것은 66년 봄 "창작과 비평"지 창간과 정확하게 맞먹는다.
  제3공화국의 제1차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되면서 학계, 문화계에 회오리치는 '근대화 논의,' '한국적
민주주의 논의,' '국학 붐' 등에 발맞추듯이 문단에서도 '순수참여 논의,' '시민문학론,' '민중문학
론,' '농민문학론,' '리얼리즘론' '민족문학론' 등이 심화된 양태로 논의되고 있으나, 정작 실제로 시
나 소설에서의 업적은 괄목할 만하게 눈에 띄지는 않는다.
  그런 심층적 논의는 따로 놀고, 태반의 작가 시인들은 두껍디 두꺼운 평판(平板)한 일상에만 지나
치게 안주해 있으며, 손꼽을 정도의 몇몇을 제외하고는 그냥 시대의 겉가죽으로만 스쳐가고 쓸려가
고 있지 않았는가 보여진다.  


  



***** 남명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5-08-25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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